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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별세, 민주화 운동권 1세대에서 국무총리까지…한국 정치에 남긴 긴 발자취

won5683 2026. 1. 26.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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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별세, 민주화 운동권 1세대에서 국무총리까지…한국 정치에 남긴 긴 발자취

25일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별세하셨습니다. 고인은 운동권 1세대로 출발해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 정치의 한 축을 오랫동안 담당해 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정부를 거치며 주요한 정치적 국면마다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해 10월 제22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돼 활동하던 중 베트남 출장 중 쓰러지셨습니다. 민주평통 관계자에 따르면 23일 호찌민 일정 중 몸 상태 이상을 느껴 귀국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고, 곧바로 현지 땀아인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심근경색 진단 이후 스텐트 시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25일 오후 2시 48분 현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고인은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해 성장하셨습니다. 용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 입학했고, 유신 체제에 맞선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수감 생활을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받은 고문의 후유증을 평생 안고 지내셨습니다.

출소 이후에는 서울 신림동에서 사회과학서점 광장서적을 운영하며 재야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당시 36세로 국회 최연소 의원이었으며, 이후 한 차례 불출마를 제외하면 지역구 선거에서 모두 승리해 7선 기록을 세우셨습니다.

2016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배제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인은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정치적 소신을 드러냈습니다. 선거 전략가로서도 활동하며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승리를 이끄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는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돼 교육 정책 전반에 큰 변화를 주도하셨습니다. 고교 평준화 확대와 학력고사 폐지, 수능시험 도입 등이 이 시기에 이뤄졌고, 해당 시절 학생들을 가리켜 이해찬 세대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교육 제도 전반에 남긴 영향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무총리를 맡아 국정 운영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 구상을 주도하며 국가 균형 발전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데 관여하셨고, 책임 총리라는 평가를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내셨습니다.

민주당 대표를 두 차례 지내며 당 운영과 선거 전략을 이끌었고, 2020년 총선에서는 180석 압승을 이끌며 정치적 저력을 다시 보여주셨습니다. 이후에도 선거 국면마다 조언자 역할을 맡아 왔으며, 정치권에서는 네 명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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